전영재 기자의 DMZ로 떠나는 생태기행
잠시나마 햇살이 있는 용늪의 아침은 유난히 분주하다.
안개가 잠시 걷힌 용늪에서는 쫒고 쫒기는 냉엄한 자연의 생존원리가 언제 누구에게 닥칠지 몰라 팽팽한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약육강식의 처절한 자연의 질서가 존재하고 힘센 녀석이 항상 우의를 차지하는 자연의 논리는 용늪에 사는 특수식물들을 더욱 강하게 단련시켰다.
그렇지 못한 녀석들은 보호색으로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터득하며 진화했을 것이다.

용늪은 수분이 많고 강한 산성의 토양이기 때문에 습지 식물 이외에는 버티지 못한다.
용늪은 이것을 무기로 제 영역을 확보할 수 있었고 주변에 병풍처럼 둘러 쳐진 나무들의 침입을 어느 정도 막아왔던 것으로 분석됐다.
용늪으로 이어지는 도랑 옆에 줄지어 사는 가는오이풀과 왕미꾸리 꽝이, 줄풀, 골풀, 달뿌리풀 등 물을 좋아하는 식물들도 흔하게 볼 수 있다.

5월이면 용늪에는 기생꽃이 많다.
연평균 4도 안팎의 기온인 용늪에서 꿈틀대는 생명의 힘이 느껴지는 시간은 바로 5월- 9월까지 단지 다섯달 뿐이다.
이 짧은 여름 그들은 살아남기 위한 힘겨운 투쟁을 벌인다.
고층습원 용늪 주변에서 살아가는 식물 가운데서 가장 희귀하면서도 대표적인 종류는 벌레를 잡아먹고 사는 식충식물인 끈끈이주걱이다.
끈끈이주걱은 잎 가운데서 끈끈한 점액을 내뿜어 날아다니는 작은 곤충을 유인한다.
이 끈끈한 점액에 붙은 벌레들이 발버둥 칠수록 더욱 필사적으로 벌레를 붙잡기 위해서 점액이 묻은 섬모를 오그린다.
식충식물인 끈끈이주걱은 4월 초부터 벌레를 잡아먹기 시작해 5월과 6월 두달동안 가장 왕성한 식욕을 보인다.

또한 용늪의 대표식물인 물이끼는 물 속에 다량의 물을 저장하고 살아간다.
물이끼가 스펀지처럼 물을 잘 흡수하는 몸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용늪의 식물들이 나름대로 살아 갈 수 있는 생존방식을 가지고 있다.
용늪의 짧은 여름이 깊어질수록 여러 가지 많은 꽃들은 생명을 잉태하느라 분주하다.
7월의 한여름 아무리 더운 달이라도 용늪의 낮 기온은 섭씨 16도를 넘지 않는다.
이것이 용늪형성의 중요한 조건이 된다.
8월이 용늪엔 전세계에 단 두 종 밖에 없는 한국 특산식물인 금강초롱이 꽃모양을 드러낸다.
연보라색의 긴 종모양의 금강초롱은 땅을 보며 다소곳이 피어난 모습이 청초하고도 완벽한 조형미를 느끼게 한다.
아랫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꽃모양 때문에 가엾은 어린 동자의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동자꽃이나 줄기에 비해 청아한 빛을 내는 모싯대도 용늪 한쪽 자리에 그들의 보금자리를 만든다.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자라는 자주가는오이풀, 네 갈래로 벌어진 꽃의 모양이 고깃배의 닻과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닻꽃, 습지 부근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숫잔대, 다섯 장의 꽃잎이 제비꼬리처럼 날렵하게 퍼져 이름 붙여진 제비동자꽃은 희귀한 꽃이다.

습지를 좋아하는 식물중에 용늪에만 사는 식충 식물인 북통발이 있다.
일명 개통발이라고도 하는 이 식물은 생태계의 순리를 거부하고 곤충을 먹이로 삼는 식물이다.

  흔히 저지대의 논이나 늪에서 물에 둥둥 떠 다니는 일반 통발과는 달리 북통발은 먹이를 잡기 위해서 땅속 줄기를 이탄층에 뻗고 있다.
땅속으로 자라는 가지에는 흰색의 포충낭이 달려 있어 바로 이 포충낭이 먹이를 잡는 것이다.
잎이 변형된 주머니 모양의 포충낭은 보통 작은 가지 한 개에 60개에서 70개가 달려 있다.
포충낭 주변을 지나는 플랭크톤을 강력한 흡수력으로 빨아들여 포충낭안에 곤충을 가두면 벽에 붙어 있는 빽빽한 소화 효소가 나와 양분을 섭취 흡수하게 된다.
태어나서 다시 자손을 퍼뜨려야 하는 이 용늪의 생물들은 이 여름이 다가는 이때가 가장 바쁜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