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재 기자의 DMZ로 떠나는 생태기행
가을걷이가 끝나면 철원 민통선은 새들의 나라로 바뀐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관찰할 수 있는 것이 V자 모양의 비행편대를 항상 그리며 날아가는 기러기들이다.
세 마리 이상이면 항상 앞장서서 가는 대장이 있고 그 뒤를 따르는 부하들이 있다.

현재 철원을 방문하는 기러기떼의 월동개체수는 3만-5만마리.
어떤 사람들은 10만마리 가량 된다고도 한다.
가을걷이 끝난 철원 민통선에서는 논바닥마다 새까맣게 앉아 있는 기러기 무리들을 볼 있다.
논에 떨어진 벼의 낟알을 조용하게 먹다가도 인기척을 느끼면 모두 고개를 반듯이 세우고 바로 날아 갈 수 있는 자세를 취한다.

쇠기러기와 큰기러기도 지구상에 그리 흔한 새는 아니다.
철원평야를 찾는 기러기떼가 워낙 많다보니 흔한 새로 생각할 수 있지만 전세계적으로는 개체수가 많지 않다.

원병오 교수는 철원을 방문해 기러기떼를 볼 때마다 전세계의 기러기가 대부분 온 것 같다며 철원 민통선의 겨울철새 월동지로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언제나 자유스럽게 방향을 바꾸는 날렵한 비행기술 때문에 기러기는 대부분 멧비둘기 정도의 크기로 생각한다.
그러나 큰기러기의 몸길이는 76에서 89센치미터, 쇠기러기도 75센치미터나 된다.

93년 "철원 민통선 철새의 비상"이라는 제목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을 때 기러기 무리 가운데 흰점을 발견하고 추적을 시작했다.
수천마리의 기러기 무리가 농경지에서 먹이를 찾고 있는데 유일하게 온몸이 흰색인 기러기가 관찰된 것이다.
취재팀은 그 기러기가 쇠기러기의 변이종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촬영을 했다.
나중에 조류도감을 보고 확인해 보니 아직 관찰기록이 거의 없는 흰기러기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단 세차례 모습을 드러냈던 흰기러기 한마리가 철원 민통선에 찾아왔다.
돌연변이가 아닌 오리과에 속하는 흰기러기는 지난 100여년 동안 1917년과 48년 경기 북부와 호남지방 등에서 단 세차례만 관찰된 귀한 철새이다.
온몸이 순백색에 날개 끝만 검은 색을 띈 흰기러기는 발과 부리는 분홍색을 띠는 특징이 있다.
1994년에는 모두 8마리의 흰기러기가 철원을 찾아왔고 1995년에는 12마리로 늘어나는 등 철원을 찾는 흰기러기의 개체수가 늘어나고 있다.
날개 끝이 검은 빛을 띠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우아한 우유빛으로 온몸을 치장해 수천마리의 쇠기러기 무리 속에서도 뚜렷이 구별된다.

그러나 1993년이후 흰기러기는 쇠기러기 무리에 섞여 계속 철원을 찾아오고 있다.

  자신들의 무리에서 벗어나 쇠기러기 무리를 따라 한 번 찾았던 철원 민통선을 그들은 따뜻한 남쪽의 월동지로 생각하고 정착해 가고 있는 것이다.

올 겨울에도 흰기러기는 쇠기러기 무리속에 섞여 새끼들과 함께 철원 민통선을 찾을 것이다.
해마다 이들이 찾아 올 수 있는 철원 민통선이 인간의 손길에 파괴되지 않고 계속 지켜 진다는 전제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철새는 환경변화의 지표이다. 아직 철새들이 날개를 접는 철원민통선의 환경은 다른 곳보다는 잘 보존돼 있다.
이들이 서서히 떠나고 죽고, 날개를 못 접으면 우리 인간도 언젠가는 살 수 없는 땅으로 변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