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재 기자의 DMZ로 떠나는 생태기행
세계적인 귀한 호사비오리가 철원 민통선에 온다는 것이 확인되어 마음이 조급해 졌다.
무작정 새를 찾아 나설 수도 없어 우선 김종식 지회장을 만나보기로 했다.

  김회장은 학같이 고고했고 자존심 강한 첫 인상을 느낄 수 있었다.
월동지에 대한 정보를 요구했지만 한마디로 거절했다.
방송에 나가면 밀렵꾼의 표적이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새를 보호하기 위해 장소를 밝힐 수 없다는데 다른 어떤 얘기로 설득할 수가 없었다. 첫만남은 그렇게 보기 좋게 묵사발로 끊났다.

삼고초려 끝에 얻어낸 대답은 언론사에 공개하게 될 경우 가장 먼저 알려주겠다는 한가닥 실날같은 대답을 얻었다.

10월초 김회장으로부터 호사비오리 월동장소를 알려 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데스크에 보고하고 차주표 카메라기자와 토요일 저녁 철원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모든 일이 잘 될 줄 알았다.
촬영한 사람이 월동장소를 안내하겠다는데 어떤 문제가 있겠는가, 아주 의기양양하게 철원에 도착했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호사비오리를 추적하는데 2달 가량이 걸릴 것은 아무도 몰랐다.

첫 날 일단 한탄강 상류와 중류, 하류 쪽 세 곳에 위장막을 치고 30킬로미터가 되는 지역을 번갈아 가며 추적을 시작했다.
일주일이 지나도 흔적조차 확인이 되질 않았다.
취재진을 매번 긴장시키는 것은 비오리였다.
가끔 비오리가 목격됐다.
멀리서 쌍안경으로 관측하고 낮은 포복으로 5백미터가 넘는 지역을 접근하면 어김없이 비오리였다.
호사비오리와 비오리는 언듯 보기에는 거의 비슷하다.
비오리 수컷은 머리와 목이 윤기나는 검초록털로 치장하고 있다 어깨 털깃은 검은색이지만 등과 허리는 검은색과 흰색의 가로 무늬가 있다.
호사비오리 수컷의 특징은 옆구리에 검은색 반달무늬가 뚜렷한 것이 다르다.

어렵게 접근 해 촬영하면 수컷의 반달무늬가 보이질 않아 실망과 좌절이 거듭됐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추적 한 달째. 11월 초순 취재에 활기를 띠게 됐다.
위장막을 쳐놓은 한탄강계곡 상류에서 날아 두번째 위장막장소 근처로 이동하는 다섯 마리의 호사비오리가 확인된 것이다.
촬영은 됐고 수컷 호사비오리의 특징도 나타났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 크기가 작았다.
날아가 앉은 지점도 위장막에서 3백미터가 넘어 카메라 렌즈가 짧아 제대로 들어오질 않았다.
다섯 마리의 호사비오리가운데 수컷이 한 마리, 암컷이 네 마리였다.
가까이 접근할수록 점점 멀어지는 호사비오리를 보면서 다시 회사로 복귀해 촬영된 화면을 모니터하자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살아 있는 호사비오리를 확인하기 위해 원병오 교수가 춘천으로 내려왔다.

  우리나라에서는 박제만 보아왔던 원교수는 살아있는 호사비오리 모습을 보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취재팀에게 좀더 근접 촬영해 시청자에게 제대로 모습을 보여줄 것을 데스크에 요구하기까지 했다.
한마디로 취재기간을 넉넉히 주라는 얘기였다.

1993년 11월 21일 일요일 낮. 호사비오리 암컷 두 마리를 제대로 촬영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수컷이라야 확실히 비오리와 구별이 되는 안타까운 숙제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눈내리는 민통선! 시베리아의 삭풍은 위장막 속으로 파고들어 몸이 동상처럼 완전히 굳어 버렸지만 우리들의 눈빛은 빛나고 있었다.
경계심이 강한 수컷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마지막 출장이 12월 첫 주에 있었다.
시간은 지나가고 4박 5일의 출장이 끝났지만 촬영에 실패했다.
데스크에서 다그치는 연락이왔다.
'더 이상 시간과 기자재를 소비하지 말고 촬영 장비를 철수시키라'는 주문이었다.
우리는 하루만 더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동안의 정황으로 보아 머리싸움에서 호사비오리가 한수위임을 결론지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호사비오리는 우리 취재팀의 마지막 시도를 무산시키지는 않았다.
오후 4시쯤 암컷 두 마리와 수컷 한 마리가 바위에 고고한 자태를 내보이며 겨울 석양을 즐기고 있었다.
우린 서두르지 않았다.
취재팀이 모두 갈 경우 날아갈 것은 그동안의 경험으로 충분했다.
우리는 한줄로 모두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한 줄로 서서 호사비오리 반대 방향으로 서서히 움직였다.
그러는 사이 차주표 기자는 그 무거운 카메라와 트라이포드를 양손에 들고 낮은 포복으로 한탄강 위장막쪽으로 접근했다.
카메라 파이더에 수컷이 크게 들어왔다.
계속 녹화버튼을 누르며 테이프를 돌리고 또 돌렸다.
바위위에 앉아 부리로 깃털을 다듬는 모습, 날갯짓을 하는 모습 등을 모두 촬영했지만 호사비오리는 떠날 줄 몰랐다.
문제는 혼자 위장막쪽으로 접근하다 보니 가지고 간 테이프가 하나 밖에 없었는데 카메라에 테이프가 거의다 녹화됐다는 경고등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차주표 기자는 물에서 헤엄치는 수컷 호사비오리의 촬영을 위해 기지를 발휘했다.

  잠시 녹화를 멈추고 작은 돌멩이를 하나 골라잡아 큰 위협을 받지 않도록 강쪽으로 던졌다.
수컷 호사비오리는 마치 밥먹을 시간을 놓친 것을 깨우쳤다는 듯 민통선의 석양 빛을 받으며 잠수를 반복하며 물고기 사냥을 시작하는 모습을 연출해줬다.
이무렵 카메라에 들어있던 테이프는 모두 녹화가 끝난 상태였다.
한국언론사상 처음으로 66년만에 호사비오리 촬영은 이런 과정을 거쳐 이뤄졌고 시청자에게 찾아갈 수 있었다.
이로써 철원 민통선에 희귀조 한 종이 또 추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