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재 기자의 DMZ로 떠나는 생태기행
1993년 당시 강원도내 농업 관련 취재를 담당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강원도 농업 기술원 공보계장이던 최봉현 현 과장이 농업 관련 취재를 하고 있는데 지나가는 말로 말을 건넸다.

"전기자! 새를 좋아하니까 얘긴데 혹시 귀한 새 박제도 취재가 될까?"

나는 바로 반응을 보였다.

" 철원 농민 후계자 가운데 한사람이 하사비오리(나중에야 호사비오리로 확인됐다)라는 백두산에만 사는 귀한 박제 한 쌍을 가지고 있어. 언제 철원 한번 취재가게되면 연결해 줄께"

필자의 야생조수 필드 스승인 당시 강원도 임업 시험장 조성원 연구사에게 '하사비오리'를 아냐고 물었더니 '호사비오리'라며 박제에 얽힌 얘기와 호사비오리의 희귀성에 대해 얘기를 해줬다.
문교부 발간 한국 동식물도감을 보니 호사비오리에 대해 자세히 나와 있었는데 촬영만 한다면 세계적인 특종이 될 수 있었다.

전 세계에 불과 5백마리밖에 남지 않은 호사비오리는 국제자연보호연맹인 IUCN은 적색목록에 올려 국제적인 보호를 하고 있는 희귀조였다.
백두산에서 월동한다는 호사비오리 한 쌍이 발견된 것은 1988년 역시 철원 민통선 근처 남대천, 88년 2월 민통선 근처 철원군 토성면 남대천 변에서 아직까지 보지 못했던 귀한 새 한 쌍이 죽어있는 것을 주민이 발견했다.

당시 한국 조류학계의 대부였던 경희대 원병오 교수는 이미 박제가 된 이 새를 확인하기 위해 철원을 찾았다.

  이 박제된 새를 본 원병오 교수는 한마디로 감격했다.
그동안 문헌상으로 그것도 손꼽을 정도로 채집기록이 있는 희귀조 중에 희귀조 호사비오리였기 때문이다.

호사비오리는 1912년 4월 16일 함경북도에서 수컷 두 마리가 첫 채집된 기록과 1927년 11월 20일 한 개체를 서울 시장에서 구입한 과거의 낡은 기록만이 남아있다.
특히 전쟁후 기록은 아직까지 전해지지 않다가 1988년 한 쌍이 모습을 처음으로 드러낸 것이다.


함경북도에서 채집된 어린 수컷 두 마리는 현재 미국 뉴욕 자연사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서울시장에서 구입한 어린 수컷 한 마리도 당시 얼마나 귀했으면 이왕직 박물관에 소장했다가 창경원 표본관을 거쳐 지금은 국립과학관에 옮겨져 있다.
원병오 교수는 그동안 국내에서 호사비오리를 관찰하지 못하자 중국 동북부 지방의 번식지를 찾아가 연구 조사 한 적이 있다.

시베리아 싸오젠 알렌 산맥이 번식지인 호사비오리는 최근 중국 동북지방에서도 번식하는 것이 확인됐으며 학자들은 백두산 남사면 북한땅에도 적은 무리가 번식할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무슨 이유로 호사비오리 부부가 죽은 채로 발견됐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1988년에 죽은 새가 죽어 박제가 됐다면 다른 지역에도 호사비오리가 찾아와 겨울을 나고 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취재를 나서기 시작했다.
다른 기록들을 찾고 있는데 1993년 6월쯤 모일간지에 호사비오리 관련 기사가 대서특필됐다.

  백두산의 봄을 알리기 위해 호사비오리가 철원 민통선 한탄강변에서 지난 겨울을 났다는 내용이었다.
촬영한 사람은 한국조류보호협회 철원지회장 김종식 이라는 얘기와 함께. 부부 호사비오리가 주검으로 발견된 뒤 눈 덮힌 철원평야를 누비며 처음으로 살아 있는 모습을 스틸카메라로 처음으로 촬영한 사람이 됐다.
호사비오리는 국제조류 보호회의가 간행한 적색자료서인 RED DATE.BOOK.에서 북한지역 절종 위기종으로 분류된 새이다.
그 새가 민통선에 건강하게 살아있음을 한 지역의 조류보호단체 지회장이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