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재 기자의 DMZ로 떠나는 생태기행
자연 다큐멘터리를 취재하는 기자는 희한한 기사를 많이 쓴다.
다른 영역이야 취재원이 확보되지만 자연 다큐멘터리 취재기자의 취재원은 바로 야생동식물이기 때문이다.

  가끔 새나 동물에 미친 사람들이 어떤 새가 나타났다고 제보를 하지만 날개가 있고 네발이 있는 짐승을 무슨 수로 찾아 촬영해 시청자에게 보여주느냐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1995년 2월 20일 철원 민통선에는 재두루미 암수컷 한 쌍이 방사됐다.
이 녀석들은 그동안 용인에버랜드에서 인공 부화돼 야생 상태에서는 전혀 살아본 적이 없었다.

에버랜드측은 인공부화돼 살아온 재두루미 한 쌍이 자연에서 한 달가량 지내다 다른 무리들과 함께 번식지인 시베리아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방사된 지 사흘이 지난 23일 오후 철원 민통선 철의 삼각 전망대 소장으로부터 방사한 수컷 재두루미가 차에 치여 숨졌다는 전화가 왔다.
나는 몇시에 어디서 누가 운전하던 차에 치여 숨졌는지를 취재했고 데스크에 기사를 넘겼다.
기사내용은 '지난 20일 에버랜드가 방사한 인공사육된 재두루미 수컷이 화물차에 치여 숨졌습니다.
오늘 오후 2시 20분쯤 철원 민통선 강산 저수지 앞 도로에서 철원군 00면 00리에 사는 00살 00씨가 운전하던 화물차량이 도로에 나와 있던 수컷 재두루미를 치어 숨지게 했습니다.
경찰조사 결과 운전자 아무개씨는 이 재두루미가 차가 가까이 가면 날아 갈 줄 알고 운행하다가 사고를 낸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문화방송 전국부에 기사를 송고하자 다른 동료기자들이 놀려대기 시작했다.

" 야! 전기자 . 대한민국에서 새 교통사고를 기사로 쓴 것은 네가 처음일 거다"

그림을 확보하지 못해 방송은 되질 않았지만 당시 교육방송에서 방사 재두루미를 취재하다 교통사고 장면을 취재해 이튿날 방송됐다.

  재두루미 몸에서 빠져 나온 깃털은 철원평야에 부는 바람에 이리저리 흩어졌다.
속수무책으로 죽어 가는 수컷을 지켜보기만 하던 암컷 재두루미는 자기 짝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었다.
새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나흘 전 공중으로 날려 질 때만 해도 천연기념물 한 쌍이 자연속으로 되돌아 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했었다.
그러나 인공부화돼 울타리 속에서 길러진 재두루미의 날개는 높은 창공을 날아가기에는 약했다.
인공 부화된 재두루미에게 야생 자연은 오히려 낯선 곳이었다.

인간들은 두루미를 자연으로 돌려보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버리고 온 셈이 되고 말았다.

여기에는 몇가지 문제점이 나타났다.
천연기념물 생명문화재를 방사하면서도 자연 적응 기간이 부족했다.
에버랜드측은 불과 우리 안에서 한 달가량 자연 적응 기간을 갖고 철원 민통선에 풀어 놓은 것이다.
더구나 알에서 깨어나면서부터 사람 손에 자란 재두루미는 스스로 먹이 찾기에도 역부족이었다.
뒤에 다시 에버랜드 측에서 수컷을 후송하기는 했지만 천연기념물 조류의 방사 사업이 그리 쉽지 않다는 교훈을 귀한 생명문화재를 희생시키고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지역주민들의 참여와 관심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결론도 나왔다.
인공 부화된 재두루미는 충분한 야생적응 훈련과정을 거쳐야 비로서 푸른 창공을 마음대로 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