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재 기자의 DMZ로 떠나는 생태기행
우리나라를 찾는 새 중에서 가장 우아한 새는 학으로 불리는 두루미다.

  우리 민족을 흔히 백의민족이라고 하지만 흰색과 검은색의 조화는 두루미가 압권으로 꼽힌다.

두루미는 새 중에서 큰 날개를 가지고 있고 해마다 번식지인 시베리아에서 월동지인 철원 민통선까지 3천킬로미터가 넘는 비행을 반복하고 있다.
두루미는 조류의 진화에서 가장 초기에 등장한 종들 중의 하나라고 한다.
두루미는 범세계적인 의미를 갖는다.
큰키, 아름다운 모습, 잊을 수 없는 특유의 울음소리,새들 중에 가장 아름다운 구애 행동을 가진 독특한 조류다.

그래서 우리민족 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 등 동양에서 가장 상서로운 새로 인식해, 고고와 장수, 어짊, 지조와 초연함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두루미는 몸빛이 눈처럼 희고 자태는 우아하며 비상할 때의 나래 깃은 어느 새와도 비교가 안될 정도로 정교함이 한치의 오차도 없는 수평의 나래를 편다.
신선이 타고 다닌다는 새, 두루미가 분단의 현장에 해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무리를 지어 온다.

1992년 12월 철원 민통선 사방지리에서는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이른바 두루미 부부의 '정절의 사건' 이 발생했다.

  남편 두루미가 긴 여행 끝에 죽자 부인 두루미는 황량한 철원 들판에서 이레 밤낮을 울부짖다 남편 옆에 탈진해 쓰러졌다.
수색중대 병사들은 두루미 한 마리가 꼼짝없이 한 장소를 맴돌며 쓰러지자 한국조류 보호협회 철원지회에 이 변고를 기별했다.
회원들이 달려왔을 때 두루미는 눈을 감고 신음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남편 두루미가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남편의 임종을 지키던 암두루미는 남편의 시신을 지키다 그 옆에 누워 죽음을 기다렸던 것이다.

한국조류보호협회로 긴급후송된 이 두루미는 김성만 회장의 극진한 간호와 특별히 만든 영양식을 먹으며 한 달이 지나서야 겨우 건강을 회복했다.
조류보호협회 회원들은 남편과 사별한 이 두루미를 번식지로 보내기로 결정하고 발목에' SEOUL KOREA.1993 11 7.KBTA'라는 알루미늄 가락지를 달아주었다.

두루미 방사 사건은 새를 좋아 하는 사람들에게 지금도 전설처럼 아름답게 전해지고 있다.
번식지인 러시아 한카호로 두루미를 보내기 위해 방사하던날 우리를 나온 두루미는 그 동안 지극 정성으로 자신을 돌봐준 김성만 회장에게 다가가 긴부리로 김회장의 손을 툭툭 쪼아대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리고 자신을 환송나온 2백여명이나 모인 조류보호협회회원들에게 파란 하늘에 흰 원을 다섯바퀴나 그리며 선회 한 뒤 흰점이 돼 북쪽으로 날개짓을 시작했다.

최무영 시인은 정절의 상징이 된 그녀를 위해 즉흥시를 철원평야에 울려 넘치게 망부가를 낭송했다.

오늘
얼어붙은 철원벌에서
목메인 망부가를 듣는다.

이레낮
이레밤을 지새워
하늘에서 사무치고 땅을 울리던
뜨거운 울음소리 듣는다.

삭풍보다 맵고
눈보라보다 치열한 정절로
망부의 시신을 지키며
이승과 저승의 문턱을 넘나들던
네 거룩하 사랑.

너 무어라 부를까
춘향이라 부르기엔
인간의 어휘가 너무 때묻고
열녀라 부르기엔
은장도 칼날보다 새푸른 너의 눈빛이
너무 애잔하구나

오늘
다투고, 배신하고, 갈라서기를        
삼시 세 때 밥먹듯 하는
썰렁한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따뜻한 불씨 하나 묻어 놓고
우리 곁을 떠나는 너.

잘가라
비록 남은 생애가
눈물과 한숨으로 얼룩진다해도
산다는 것은 좋은 일
살아 있음은 하늘의 축복이므로.

잘살아라
그리고
부디 행복하여라
행복하여라.

1993년 이후 한국조류보호협회 회원들은 해마다 두루미가 찾아오는 11월 초순이 되면 이 망부가의 주인공을 찾기 위해 드넓은 철원 평야를 헤매지만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 정절의 표상은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