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재 기자의 DMZ로 떠나는 생태기행
어느 부대부터 시작됐는지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1990년대 초 멧돼지가 매립한 잔밥을 먹어치우자 병사들이 잔밥을 모은 통을 멧돼지가 다니는 길목에 놓아 주기 시작했다.

  중동부 전선 육균 백두산 전방부대에는 멧돼지 농장이 있다.
말 그대로 멧돼지가 매일 15마리-20마리 가량 찾아오자 잔밥통도 멧돼지가 먹기 좋은 높이로 교체해 주는 배려까지 했다.
문등리 수색 중대 병사가 경계근무를 서도 멧돼지 가족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뢰밭에서 군사 보급로를 지나 먹이 장소로 찾아 온다.

철책선 주변의 소초와 전방 수색중대에는 적게는 5마리에서 많게는 20마리 가량의 멧돼지가 매일 부대 막사 주변을 찾아온다.

정확한 멧돼지 수는 취합한 적은 없지만 전방 병력을 소초(소대단위)로 나누고 거기에다 평균 7마리 가량을 곱하면 민통선 지뢰밭에 있는 어마 어마한 멧돼지 가족의 수가 계산이 될 수 있다.
특히 먹이 찾기가 힘든 겨울이 되면 전방 부대 막사주변을 찾는 멧돼지 개체수는 더욱 늘어난다.
멧돼지들이 병사들이 자신을 해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인식하는데 10여년 세월이 걸렸다.
전방에서의 철통같은 경계가 계속되고 민간인들의 밀렵 행위가 근절되면서 이뤄진 일이다.
군생활을 10년 넘게한 전방부대 행정보급관(옛 인사계)들의 한결같은 증언은 병사들이 멧돼지를 보호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부터 겨울이 되면 소대 식당 주변까지 돌진한다는 것이다.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번식기가 끝나자 어미 멧돼지가 어린새끼를 데리고 오는 것이다.
지뢰밭에서 살아가고 있는 어미 멧돼지가 새끼들에게 먹이를 구하는 방법을 학습하는 것이다.
특이한 사항은 야행성답게 주로 낮보다는 해가 질 무렵에 먹이를 찾아오는 멧돼지들이 많다.
병사들은 부대 주변을 찾아오는 멧돼지들의 생김새를 고참이 될수록 뚜렷이 구별해 냈다.
철저한 행동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의 반증이었다.

전방 지뢰밭에 사는 멧돼지는 사실 장병들이 키우고 있는 셈이다.

중부 전선의 보급로는 멧돼지의 중요한 이동 통로이기도 하다.

  장병이 경계근무를 하고 있는 동안 오후가 되면 멧돼지들은 어김없이 이 군사 보급로를 건너 반대편 지뢰밭으로 먹이를 찾아 나선다.
새끼 돼지하고는 다르게 2년가량된 이들 멧돼지는 마치 장병들이 경계 근무를 잘하고 있는지 순찰하듯 여유있는 걸음걸이로 쳐다보며 이동한다.
수컷 멧돼지도 행동요령은 똑같다.

전방의 장병들이 체력단련을 위해 벌이는 소대대항 족구 시합! 소대원들의 열띤 응원에 잠을 깬 멧돼지들! 궁금한 듯 막사 주변 지뢰밭에 모이기 시작하더니 족구시합을 구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