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재 기자의 DMZ로 떠나는 생태기행
운좋게 민통선 겨울 산에서 멧돼지 무리를 만났을 땐 죽음의 땅 지뢰밭이 생명의 땅으로 성큼 다가왔다.
멧돼지는 발목까지 눈에 빠지면서 먹이를 찾아 한 발 한 발 지뢰밭을 개척하며 이동한다.

  먹이가 부족한 겨울은 멧돼지 같이 겨울 잠을 자지 않는 야생동물에게는 삶을 이어가기 어려운 고통의 시간이다.
그래서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야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

멧돼지의 겨울 주 먹이는 고사리 뿌리나 도토리, 여러 가지 야생 과실을 주로 먹는다.
그래서 활엽수림이 잘 발달한 지역에서 주로 서식한다.
부족한 단백질은 바위나 돌, 나무 밑에서 겨울잠을 자는 곤충의 번데기로 보충한다.

민통선의 혹독한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잠자리도 필요하다.
멧돼지는 마른풀과 바위 이끼, 작은 나뭇가지로 집채만한 보금자리를 만든다.
이곳에서 10마리가량이 한 집단을 이루고 겨울을 보내며 단체 생활의 규율과 질서를 배운다.

3월 초순 민통선 지뢰밭은 아직 겨울의 한가운데를 살고 있어 여전히 황갈색이다.
특별한 행동권역이 없는 이들 무리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지뢰밭을 누비며 먹이를 찾는다.

멧돼지는 생김새가 기품이 있거나 아름답지는 못한 동물이지만 열악한 자연 조건에서의 적응력, 특히 지뢰를 밟아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 있는 지뢰밭에서의 적응력은 멧돼지를 따라올 야생동물이 없다.

오랜 자연의 적응 생활 속에서도 특수화 되지 않게 살아온 멧돼지의 생명력은 잡식성에 있다.
멧돼지는 후각과 청각이 잘 발달한데다 위협을 느낄 땐 어느 맹수 못지 않게 저돌적으로 공격을 하는 습성이 있다. 그러나 잡식성 때문에 일반적으로 우둔성이 부각돼 있다.
잘 발달된 후각은 멧돼지의 자랑거리이다.
이 후각 능력으로 지뢰밭에서의 힘든 삶도 개척하고 있다.
특별한 위협이 없으면 멧돼지는 안전성이 확보됐기 때문에 자신이 다니는 길목으로만 이동한다.

멧돼지의 기본적인 사회구조는 단순하다.

  단독생활을 하는 어른 수컷은 짝을 찾을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혼자서 생활한다.
민통선 지뢰밭에서 혼자 움직이는 멧돼지는 대부분 수컷이다.
모든 포유류 야생동물이 그러하듯이 멧돼지도 모계 중심으로 무리를 이루고 있다.
암컷은 아직 번식능력이 없는 새끼와 공동생활을 한다.
때로는 여러 마리의 새끼를 두 마리 이상의 암컷이 보호하며 키우기도 한다.

둥근 모양의 멧돼지 코는 우스꽝스럽게 생겼지만 먹이를 찾는 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겨울부터 초봄까지 먹이가 부족한 때는 땅을 파서 먹이를 찾는데 요긴하게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