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재 기자의 DMZ로 떠나는 생태기행
1968년 고층습원 용늪에 대한 가치는 학술 조사단에 의해 발견됐지만 제대로 된 보호 대책이 추진되지 못하면서 본래의 모습을 잃게 되는 희대의 사건이 1,300고지가 넘는 대암산에서 일어난다.

  1977년 안보가 강조되던 시절 병사들의 체력단련을 위해 군부대는 이 곳 용늪에 스케이트장을 설치하기 위한 공사를 벌였다.
이 스케이트장 건설로 늪 전체 면적의 10분의 1을 막았던 둑이 일부만 무너진 채 그대로 서있다.
그 이후로 용늪은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고 신음하기 시작했다.

스케이트장을 만들려고 곳곳에 파놓은 배수구를 통해 늪의 수분은 빠르게 유출되었고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기 시작했다.


또한 사격 시설을 만들기 위해서 용늪의 왼쪽을 계단 모양으로 깎아내 이탄층이 노출되었다.
그래서 용늪은 비가 많이 오는 우기철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건조한 지층으로 나타나 이를 아끼는 학자들을 걱정하게 한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용늪의 생태계는 또 다른 변화에 남모를 몸살을 겪고 있다.
용늪의 먹이사슬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 관찰되지 않았던 도롱뇽과 달팽이, 가재가 출현하고 있다.
양서 파충류가 등장하면 이를 먹이로 하는 멧돼지 같은 잡식성 포유류가 먹이 사냥을 위해 등장할 것이다.
사실 용늪 주변에서는 멧돼지가 나타나 어지럽게 파헤쳐 놓은 이탄층을 쉽게 볼 수 있다.

오랫동안 금단의 땅으로 여겨졌던 용늪의 생태계가 크게 훼손돼 가고 있는 것이다.
학자들은 용늪이 육지화 되면서 관목들이 초지에 많이 침투하는 것에 대해 용늪이 사라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4,500년동안 다양한 식물의 생성과 소멸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귀중한 용늪이 급변하고 있지 않은가.

  1년에 겨우 1밀리미터밖에는 자라지 않는 용늪의 이탄층, 이 이탄층은 이 땅에 우리와 함께 살아온 꽃들이 짧은 생애를 피우고 다시 그 자리에서 말라버린 잎들이 쌓여야 그 생명력을 갖고 유지되어 소멸속에 생명이 있는 용늪은 한반도 자연 생태계의 살아 있는 역사이기도 하다.

자연이 수 천년에 걸쳐 만든 두 개의 고층습원 가운데 마지막 남은 하나를 지킬 책임은 우리의 의무이다.
그것은 자연 생태계 보전구역으로 지정한다고만 되는 것이 아니다.
용늪 주변 군부대의 오수 유입은 물론 자동차와 사람의 통행으로 토사가 유입되는 것을 절대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