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11월 20일 산양은 육지에 사는 포유류 가운데 처음으로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217호로 지정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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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가슴곰은 1982년 11월 4일 지정됐다. 14년이나 일찍 지정됐으니 그만큼 귀한 생명 문화재로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산양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고도 국가에서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 산양의 서식지로 국내에서 양구 방산면 천미리가 유명해진 것은 1983년. 하늘아래 첫 동네로 알려진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천미리의 박만호씨 가족이 산양가족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82년 2월 초 폭설이 내린 어느 날 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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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는 이 날 새벽 염소새끼가 엄마를 찾는 소리가 나 밖으로 나가보니 강아지보다 조금 큰 산양새끼 한 마리가 어미를 찾으며 눈이 덮힌 야산 옆의 밭을 헤매고 있었다. 박씨는 어미 잃은 새끼산양을 안아 집으로 데려워 방안 아랫목으로 데려갔다. 추위와 배고픔에서 떨던 새끼산양을 아랫목에 앉혀놓고 몸을 녹여주었다. 산양은 곧 생기를 되찾았지만 자연에서 태어난 야생동물은 박씨 가족에게 정을 주지 않았다. 어린 산양은 밖으로 뛰쳐 나가려하는 소란통에 부인 이명옥씨가 시집올 때 가져온 화장대를 깨뜨리기도 했다. 박씨는 어린 산양에게 양이 좋아한다는 콩깍지를 먹이며 정성스럽게 보살피기를 일주일 가량 했더니 산양은 그다음부터 박씨를 따랐다. 먼발치에서 박씨가 나타나면 산양은 마치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처럼 긴꼬리를 흔들며 반기기까지 했다고 한다. 봄여름이 지나면서 아기 같던 산양이 부쩍 자라 다 큰 산양의 기품 있는 모습으로 하루가 다르게 변모해 갔다. 엄지 손가락만 했던 두 개의 뿔도 한 뼘은 되게 자랐고 몸도 제법 의젓해졌다. 아장아장하게 걷기 시작한 박씨의 아들 성배와도 친구가 됐다. 성배는 아침에 눈을 뜨면 산양을 찾았고 풀도 뜯어다 먹였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가을 어느 날 자랄대로 자란 산양이 이웃집 어린애를 날카로운 뿔로 들이 받는 뜻하지 않는 사고가 발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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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는 이 산양을 풀어주기로 했다. 우리에서 풀려난 산양은 처음에는 신나게 산으로 달려가더니 해 가지면 "메에"하고 다시 우리로 돌아왔다. 박씨는 아예 우리의 문을 열어 놓았지만 산양은 우리를 떠날 줄을 몰랐다. 산양을 14개월이나 키운 박씨와 새끼 산양은 말도 통했다고 한다. "이리로 오라"고 하면 이리로 오고, 박씨가 "발을 달라" 고 하면 왼발을 내밀기도 했다고 한다. 그 새끼 산양은 1983년 6월 21일 당시 강원도 임업시험장으로 보내라는 사법당국의 조치에 따라 박씨 가족과 이별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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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천연기념물인 산양을 키우고 있다고 박씨를 경찰에 신고했고 박씨는 조수보호법 위반으로 입건됐기 때문이다. 박씨는 이 조치에 대해 당시 취재했던 기자에게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산양을 키우는 게 죄가 될 줄을 몰랐는데....." 박씨는 비무장지대 산양을 14개월 동안 민박시켰던 유일한 주민이었다. 박씨 가족의 산양 키우기 소식이 알려지면서 대부분의 언론은 박씨 가족의 산양 사연을 대서 특필했고 1960년 이후 살아 있는 산양이 처음으로 생포됐다고 야생조수 전문가들은 환영했다. 지방의 한 신문은 산양이 옮겨지는 과정을 1983년 6월 21자로 '도내 첫 생포 산양' 이라는 큼지막한 제목에 다음과 같이 실었다. 그때도 산양관련 기사는 주요한 내용임을 당시 기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천연기념물 217호인 산양이 도내에서 처음 생포돼 농가에서 사육되다 21일 시험사육을 위해 도 임업시험장으로 이사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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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양구군 방산면 천미리에서 도임업시험장 소속 강원 7나 1166호 트럭에 실려 7시간의 먼 여행을 한 산양은
새로 마련한 우리가 낮설은지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산악고향을 그리워 하는 듯 했다......(중략) 이날 이사온 산양은 건강상태는 양호했으나 낮설은 곳에서 불안감을 떨쳐 버리지 못한 채 사람이 접근하면 날카로운 뿔로 받는 등 야성을 보이기도 했다. 도 임업시험장 조성원 야생조수류 실태 조사 요원은 "동물도감 등 문헌에 나와 있는 대로 발목의 흰 털띠와 길게 늘어진 꼬리, 날카로운 뿔 등으로 봐 산양임이 분명하다"고 했다.(중략) 도임업시험장 측은 산양을 사육키 위해 배합사료와 아까시 잎 등을 준비했으나 양구에서 키울 때 칡덩굴, 콩깍지, 옥수수 등만 먹었다는 박씨의 얘기에 따라 급히 옥수수와 칡덩쿨을 준비하기로 했다(1983년 6월 21일 강원일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