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재 기자의 DMZ로 떠나는 생태기행
2000년 흥행 기록을 세웠던 영화 중에 공동경비구역(JSA)이 있다.
     
  이 영화의 한 장면 중에 공동경비구역 남측 주인공이 철책너머로 북한군 병사에게 우정의 선물을 전하는 것이 나온다.
이 땅의 분단 아픔을 상징적으로 전하는 영화의 한 장면이 산양가족의 겨울생활에서 우리에게 처음으로 동부전선 오소동 최전방에서 실제 상황으로 나타났다.

1미터가 넘는 눈이 쌓인 비무장지대 앞으로 와 겨울을 지내는 산양가족을 위해 병사들이 나선 것이다.
지형상 가파른 지역을 따라 철책선이 쳐진 저 북쪽으로 안쪽 비무장지대에 산양 무리가 나타나다 보니 먹이 지원이 쉽지 않다.
 
전방 대대장은 오소동 소대장에게 산양들이 겨울을 무사히 날 수 있도록 병사들에게 보급되는 부식중에 남는 야채를 주도록 명령했다.
삼중으로 쳐진 철책선, 더구나 깎아지를 듯한 벼랑을 따라 먹이를 던져 준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소대장은 야간 경계 초소가운데 혹한과 폭설을 피해 산양이 내려오는 가장 가까운 초소 한 곳을 선정해 팔뚝 힘이 센 병사에게 임무를 부여했다.
철책 너머로 산양의 먹이가 될 수 있는 야채를 전달하라는 명령이었다.
한 병사가 초소위로 올라갔고 시든 배추와 감자가 도착했다.
병사는 먹이를 직선으로 던졌다.
철책선 위는 뭉게구름처럼 가시철망이 감겨 있기 때문에 먹이가 철책을 넘지 못한다.
다시 병사는 먹이를 하늘 방향으로 높이 던지자 마치 박격포탄이 포신을 떠나 포물선을 그리며 표적지를 명중하듯 산양 가족 앞에 떨어졌다.

그 다음부터 파란 배추가 공동경비구역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철책의 분단을 뛰어 넘어 비무장 지대의 산양에게 계속 전달됐다.
     
 

우리가 궁금한 것은 산양들이 생전 보지 못한 낯선 병사가 던져준 먹이를 과연 먹을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병사가 20여분 넘게 배추 20여 포기를 던져주고 초소에서 사라지자 사방으로 피신했던 산양들은 배추가 있는 쪽을 한참동안 바라만 보고 있다.

인제지역 비무장지대에서 산양의 무리들은 초봄이 되면 쑥과 냉이만을 골라 먹은 기억이 났다.
문헌상에도 초봄에는 산양이 쑥을 좋아하는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한겨울에 푸른 것이래야 상록수 잎 밖에 없다.
물론 오소동에 와서 겨울을 지내는 산양 무리가 앞발을 소나무 수간에 곧추세우고 솔잎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관찰되기도 했다.

흰 눈속에 떨어진 배추! 산양을 유혹하기에 충분한 조건이 된다.
두 시간 정도가 지나자 경계를 풀은 산양 서너마리가 배추가 던져진 쪽으로 오기 시작했다.
와서 한참 냄새를 맡아보고는 정신없이 먹기 시작한다.
병사가 던져준 배추를 먹는 것이 확인되자 철책을 넘어 던져주는 '사랑의 포물선'은 며칠간 계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