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재 기자의 DMZ로 떠나는 생태기행
분단은 이땅에 비극의 생태를 만들어냈다.
     
  남북의 동서를 가로질러 백두대간의 기상을 끊어 놓은 철책선은 이들의 주인인 산양의 집단 탈진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이튿날 내가 오소동에서 만난 산양들은 모두가 건강한데 말이다.
사전적으로 탈진의 의미는 '기력이 빠져 모두 없어짐'이다.
기력이 빠져 모두 없어진다는 것은 음식을 주어도 받아 먹을 힘이 없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야생동물이 전혀 먹이를 받아 먹을 힘조차 없을 때 탈진이라고 하며 동물학자도 이에 동의한다.

그러나 오소동에서 발견된 산양의 무리는 2미터가 넘는 눈이 쌓이자 먹이를 찾아 저지대로 눈속을 헤치고 나오다 보니 움직임이 더딘 것 뿐이지 탈진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물론 한국 야생동물 전문가조차 직접 산양의 겨울 생태를 자연에서 직접 본 적이 없고 또한 관찰기록이 정리된 것이 전혀 없다보니 전방의 병사들은 저지대로 내려온 산양을 보았기 때문에 보도 자료가 '비무장지대 산양 탈진' 이라고 나왔을 것이다.
고맙게도 탈진한 산양은 한 마리도 없었다.

비무장지대에 와서 다시 산양을 세어보니 모두 15마리나 됐다.
어제보다 7마리나 더 늘었다.
한 마리 한 마리의 건강 상태를 쌍안경으로 관찰하니 마치 헛된 이념이 만들어 놓은 철책선이 오히려 거대한 산양의 보호망처럼 느껴졌다.
산양들은 여기 저기 흩어져 정말 다양한 모습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양지바른 바위 밑에 앉아 되새김질을 하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소나무에 앞다리를 얹고 자기 키보다 높은 곳에 있는 솔잎을 따먹는 녀석도 있었다.
뒤늦게 무리가 있는 곳으로 어슬렁거리며 찾아오는 녀석도 있었고 다른 녀석이 쉬고 있는 바위가 탐이 났는지 그 자리를 빼앗으려고 실랑이를 벌이는 녀석도 관찰됐다.

민간인에게 처음 개방된 동부전선 오소동 계곡에서 취재팀을 어쩌면 태어나서 처음 보는 양 신기한 모습으로 석고상 처럼 전혀 움직이지
     
 

않고 구경하는 녀석도 눈에 띄었다.
민간인과 산양의 첫 만남은 분단이 만들어낸 한국적인 상황이었다.
우리를 더욱 슬프게 만든 것은 새끼 수 였다.
지난해 번식에 성공한 산양은 겨우 한 마리에 불과했다
열 네 마리 가운데 새끼를 데리고 다니는 어미는 불과 한 마리였다.

철책이 남북을 가로막아 야생동물이 이동을 하지 못하고 50년동안 단절된 한정된 지역에서 번식 하다 보니 그만큼 번식 성공률이 떨어 질 것이라는 학계의 걱정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이제 뿔이 겨우 돋아나기 시작한 새끼 산양은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야 한다.

     
어미의 교육은 처절할 정도로 냉정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어미는 있는 힘을 다해 눈이 쌓인 통로를 만들며 길을 개척한다.
어미가 길을 개척할 때까지 새끼는 어미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기다리다 바로 어미 뒤를 바짝 따라 붙는다.
가파른 언덕길을 만나면 어미는 위에서 새끼가 올라 올 때까지 기다려 준다.
이제 7개월 가량 밖에 되지 않은 새끼 산양이 어미에게 이 혹독한 겨울에 자연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몸으로 배우며 하나 하나 생존법을 터득하고 있다.
아무리 허기를 느껴도 먹이는 어미가 먹는 것만을 골라 새끼는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