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맞닿은 곳 바로 그곳에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의 대암산 용늪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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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습원이니 세계습지보호를 위해 람사협약 101호로 등록된 늪지여서 전문가들과 언론에 표적이
되다 시피 했지만 사실 용늪의 가치를 알게된 것은 몇 년 되질 않는다. 1995년도 용늪이 자연환경 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취재를 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양구 동면지역에서 팔랑리 검문소를 통해 철저한 사상검증을 받은 뒤 용늪을 출입할 수 있었다. 보통 열흘 전에 국방부에 어느 지역을 어떤 목적으로 어떤 장면을 어떤 샷으로 몇 컷트를 찍고 언제 어떤 뉴스시간에 얼마간의 방송을 하겠다는 내용을 미리 보내 허가를 얻어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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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3명의 고급 장교들이 언론의 취재를 위해 나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때로는 소모적이라고도 생각했지만 자신들이 맡은 일을 제대로 하고 있기 때문에 민간인의 입장에서는 다소 번거로움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군안보가 지켜지고 군사기밀이 유지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미안한 것은 이럴때다 영하 20도로 수은주가 떨어져야 철원의 샘통지역은 안개가 나타나면서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다는 것을 그림으로 확보할 수 있다. 아침 해가 떠오르기 전 전방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정훈장교가 늘 그러하듯이 어디 제맘대로 움직일 수 있는 위치가 아니지 않는가. 정훈참모 지금은 명칭이 그렇게 바뀌었지만 당시만 해도 민심참모를 속된말로 구워 삼지 않을 수 가 없다. 그래서 확보한 그림이 철원 지역에서는 아침 해가 떠오르는 그 사이로 두루미가 날아가는 장면이다. DMZ의 산양을 취재할 때는 을지부대 박종식 참모와 육군 뇌종부대 김재을 참모, 당시 오소동과 고진동 전선의 책임을 지던 정진국 대대장에게 신세를 졌다. 을지부대에서는 낮에 비무장지대 산양의 모습은 취재했지만 밤에 산양의 생태를 취재하고자 하는 욕심이 취재가 계속될수록 더욱 솟구쳤다. 박종식참모와 비무장지대 야간산양 취재 의사를 비췄을 때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아직 을지부대가 창군 이래 언론 그것도 방송사가 철책선 주변 초소에서 야간취재를 한적이 없기 때문이다. 설득의 방법은 어쩌면 간단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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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장을 설득하면 되는 것이다. 그 방법은 간단하지만 전방 사단장을 만난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그리 쉽지 않다. 사단장의 일정이 보안사항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단장을 만나 설득에 성공함으로써 비무장지대 산양의 철책선에서 야간 생태 모습이 안방의 시청자를 찾아갈 수 있었다. 당시 박참모는 참모로써 훌륭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취재기자와 사단장의 독대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줬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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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늪 밖에서 바라본 풍경은 물이 조금 고여 있고 잡목보다는 그저 잡풀이 빼곡히 차있는 모습은 농사를 짓지 않는
농경지를 산으로 옮겨 놓은 것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곳이 자연사 박물관이 이라는 명칭이 붙었을까 ? 다양한 식물을 취재하고 돌아와 자료를 하나 하나 확인하면서 들여다 보기 시작했을 때 용늪의 비밀이 하나 하나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비밀은 용늪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여러 가지 자료를 취합한 4년이 지난 뒤에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